아름답고 멋진 도서관을 떠받치는 사람들, 도서관 사서 노동
아름답고 멋진 도서관을 떠받치는 사람들, 도서관 사서 노동
신남희(은평 구산동도서관마을 관장)
도서관과 책 사이, 사서
엄마를 따라 아장아장 도서관에 오던 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5,6세부터 매일이다시피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놀기도 하던 동욱이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자주 놀다보니 사서의 꿈을 갖게 되었다며, 집 가까운 대학 문헌정보학과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한다. 성격 좋고 활발한 동욱이가 사서의 꿈을 잃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인기 있고 보는 사람들조차 흐뭇하게 하는 멋진 사서가 되리라 믿는다.
지난해 문재인대통령이 은평 구산동도서관마을을 방문하여 생활 SOC의 대표적인 시설로 마을도서관을 언급하면서 전 사회적으로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전국 지자체에서 앞 다투어 오래된 도서관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신규로 도서관을 건립하고 있다. 규모나 시설 면에서 외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도서관들이 전국 곳곳에 건립되고 있으니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도서관이 건립될 때, 규모가 얼마나 크고 건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할 사서들의 수는 충분한지, 사서들이 안정된 신분으로 즐겁게 일하고 더 좋은 사서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인지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우아하게 물위에 떠있는 오리가 물속에서 쉬지 않고 갈퀴를 움직여야 그 자태를 유지하는 것처럼, 한없이 여유롭고 편안해 보이는 도서관을 움직여나가는 사서들의 노동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 노동이 폄하되고, 헐값으로 지불되기에 결국 오래지 않아 사서들이 그곳을 떠나는 바람에,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더 좋은 서비스를 만나지 못하고 우리나라 도서관은 왜 이 모양이냐며 마음을 접어버릴 수도 있기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거나 평생교육원 등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마칠 경우 주어지는 전문자격증을 가진 사서와 일반 직원으로 이루어진다. 사서직과 일반직의 비율은 대략 2:1 정도이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이른바 직영도서관의 경우 사서직 수가 더 적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구립도서관이 위탁으로 운영되는 서울시와, 대부분의 시립도서관이 직영으로 운영되는 경기도는 우리나라 도서관 행정의 앞뒷면을 이룬다.
서울시의 경우 위탁기관이 제각각이고, 고용조건도 저마다 다른 점이 문제라면, 경기도 직영도서관의 경우는 사서직의 수가 너무 적고, 대부분의 도서관이 행정직 관장이 잠깐씩 머무르다 떠나는 임시정거장으로 여겨져 문제이다.
우아하게 자리를 지키며 바코드만 찍어주면 되는 것으로 자주 오해받는 도서관 사서들의 진짜 일은 무엇일까?
사서들은 책을 빌려주고, 책과 관련된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며, 동아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연결시킨다. 이용자들이 요청하거나 사회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의 교육 강좌와 문화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물을 만든다. 커뮤니티의 중심이자 지역시민교육의 거점으로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동아리와 프로그램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이며, 그에 따라 사서들의 업무량도 늘어나고 있다.
광역시와 자치구별로 따로 집행되는 도서구입비 액수에 맞추어 신간도서를 분야별로 구입하고, 문체부와 광역시, 자치구에서 수시로 요구하는 각종 공문에도 바로바로 답해야 한다. 뿐인가, 부족한 사업비를 보충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문화예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각종 정부부처와 기관들의 공모사업에 지원을 해서 사업비를 받아야 한다. 기관마다 요청하는 내용이 다르므로 그 기관의 요구에 맞추어 사업을 기획해야 하고, 선정되면 사전, 사후 워크숍과 성과발표회에 참가하는 등 부가적인 업무도 많다. 사업비 부족과 별개로, 얼마나 많은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나 하는 것도 도서관 성과에 포함되므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사서 노동에 대한 존중은 도서관 가치 확장으로 나아갈 것
사서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구직사이트에는 연중 사서 모집 공고가 올라온다. 특히 연말에는 더하다. 각 도서관별로 올라오는 공고들에 제시된 사서들의 급여도 제각각이다. 법정 최저임금을 간신히 지키는 구도 있고, 서울시 생활임금 수준을 제시하는 구도 있다. 야간 10시까지 운영하는 직원들을 별도로 채용하는 개관연장직원도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구가 있는 반면, 국시비 보조금에 구별 차액을 얹어 생활임금으로 지급하는 구도 있다. 사정이 이러니, 조금이라도 급여가 높은 곳을 찾아 옮겨 다니는 사서들을 탓할 수도 없다.
서울시 전체 사서직원 중 계약직원의 수는 전체 직원의 1/3에서 절반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기간제법에 의해 2년 정도 한 도서관에서 근무할 수 있고, 기간이 만료되면 다른 도서관으로 옮겨야 한다. 도서관에서 하는 업무에는 정규직과 기간제의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급여와 처우에서는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지난해 12월 계약종료를 앞둔 직원들과 면담을 하며 지속 근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기왕이면 같이 일해 온 직원들과 계속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상당수 직원들이 떠나고 싶다고 한다. 실업급여는 생활임금이라 지금 받는 급여보다 많다며, 실업급여를 받으며 사서공무원 시험 준비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직원도 있고, 사서에 대한 꿈을 접고 싶다는 직원들도 여럿 있다. 사서가 되고 싶어 전공을 했고 졸업해서 사서로 취업했는데도 이 월급밖에 못 받으며 계속 비정규직으로 떠돌고 있는데, 이러고도 계속 사서를 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조의 말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어렵게 정규직원이 되었다고 해서 처우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공무원에 준한다고 하지만, 대다수 사서들의 급수가 낮고 공무원들이 받는 수당까지 다 받지는 못한다. 지방공무원 임금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구도 많다.
급여가 낮은 것도 문제지만, 서울시 구립도서관 대부분이 민간위탁이다 보니, 오래 일해도 승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무원처럼 인사이동이 가능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승진이 이루어지는 체계가 아니다보니 직장에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실정이다.
마침 2019년 서울시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하여 서울시 사서들의 근무조건과 처우 등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서를 대상으로 이렇게 전면적인 연구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라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연구조사 결과는 예상했던 것처럼 다소 충격적이었다.
2019년 서울지역 도서관 사서 업무 대상 행정자료 분석 결과 사서들의 평균 연령은 37.3세이고, 여성이 70.8%이며, 평균 근속기간은 3.6년이다. 2019년 서울지역 도서관 사서 설문조사 결과 사서 평균 근속기간은 4.5년이며, 서울지역 사서 10명 중 7명(77.3%)이 비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 고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 설문조사 결과 사서들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42.6점(100점 만점)이며, 임금 수준(31.7점)보다 인사 승진(29.8%)에 대한 불만족이 높고, 만족도는 중간 관리자급이 더 낮았다.
서울지역 공공도서관 사서 10명 중 4명이 1년 이내 이·퇴직 의향을 갖고 있으며, 이·퇴직 고려의 주된 이유는 저임금 48%,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정규직 일자리여서 28.6%, 신체적 피로도가 높아서 28%, 일자리 장래성과 개인 발전가능성이 낮아서 23.4%, 정신적 피로 등 건강상 이유로 14.9%, 각종 복지혜택이 적어서 12%로 나타났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무척 다양하고,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폭언, 협박을 하는 이용자들도 간혹 있다. 그들에게도 무조건 친절하게 응대해야 하기에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속으로만 삭혀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노동인권 조례에 따라 보호를 받지만, 사서들은 그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서들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적이 있고, 정신건강 등에서 위험위해 요인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지난 3년간 현재 업무로 인해 육체적 질병을 경험한 사서는 16.7%, 정신적 질병을 경험한 사서는 40.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서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업무로 인해 아픈 경험(57.5%)이 확인되었다.
사회복지사는 별도의 처우와 관련 법률 조례를 통해 고용이나 임금, 복지, 교육 등 지위 향상을 받고 있으나, 사서 관련 입법과 조례는 없는 상황이다. 사서 권익 문제 해결을 위해 입법 및 조례 제정을 추진해야 하고, 이는 동일 유사 전문직 사례를 참조할 수 있다.
현재 공공도서관은 직영과 위탁으로 구분되어 있고, 위탁은 다시 시설관리공단이나 문화재단과 같은 공공위탁과 순수 민간위탁으로 나누어진다. 상시지속업무이면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도 고용형태가 달라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하여 직무, 직급, 근무조건 등 공통의 표준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아울러 도서관 운영시간, 인력기준 등에 대해서도 서울시 전체 차원에서 공동의 기준이 필요하며, 다양한 서비스가 날로 확대되고 있는 도서관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것에 걸맞는 인력 확보와 운영, 처우 보장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조사를 실시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연구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며 서울시에 정책제안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부디 그 결과를 잘 반영하여 서울시 도서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즐겁게 자신들의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 성과는 결국 서울시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서울시가 앞서 정책을 실시한다면, 아마 정부도 선진사례를 전국에 확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서를 꿈꾸는 동욱이 같은 청년들이 꿈을 잃지 않고 즐겁게 일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기획회의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