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민주주의 교육의 산실 도서관

강아래쪽마을 2020. 6. 11. 13:59

미국의 공학자이자 철학자이며 사서인 에드 디 앤절로는 민주주의의 성장과 시민들의 계몽이 공공도서관의 목표라면, 얼마나 많은 자료가 대출되었는가 하는 것만으로 성공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도서관의 사서들이 봉사한 독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좋은 시민이 되었는가를 가지고 성공을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차별없이 지식과 정보에 접근해야 한다는 근대 공공도서관의 이념은 시민 누구나 깨어나 주체가 되도록 지원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도서관의 사명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늘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며, 전국 곳곳에 촘촘한 인프라를 갖춘 공공도서관은 시민교육을 활성화하고, 사회적 독서를 촉발하고 확산하는 장이 될 수 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춘 성숙한 민주시민이 될 수 있도록 세심한 정책을 수립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도서관의 본질적 기능의 일부이다.

 

도서관과 시민교육

중고등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몇 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매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책을 읽었다고 고백한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독학자에 대한 지원, 성인교육과 도서관의 밀접한 관계는 미국 등 도서관이 조금 앞서 발전한 나라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도서관의 중요한 역할이다. 내가 만난 어떤 유명 만화가는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책냄새를 맡고 분위기를 호흡했던 일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도서관 서가를 가득 메운 책들과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도서관을 찾아온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와 부모에게는 도서관이 가장 만만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학교 부적응으로 학교를 그만둔 학생들을 포함하여, 만만치 않은 수에 달하고 있는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해서도 도서관은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공공도서관은 개인공부를 위한 열람실 기능을 탈피하고,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개인공부를 할 장소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서는 서울시 일부 자치구에서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는 공공독서실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도서관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도서관의 진화하는 모습을 시민들도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다.

2006년부터 정부는 전국 지방정부를 대상으로 평생학습도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지역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관련 사업을 펼치도록 해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평생학습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지방정부에서 관련조례 제정과 정책 수립, 평생학습공간 확보가 이루어졌다. 올해부터 정부는 평생학습도시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역에서 평생학습공간 확대는 작은도서관과 지역주민공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구청 평생교육협의회 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공공도서관도 평생학습공간이며, 평생학습의 중요한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평생학습도시에서 강조하는 평생학습공간에 공공도서관이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정책이 수립되고 실시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교육부와 문화부로 주무부서가 달라서일 것이다. 이런 식의 정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공공도서관은 중요한 평생학습공간이다. 평생학습도시의 핵심기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는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에서는 수준높은 시민교육프로그램을 서울시에 설치된 여러 학습장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이중 네트워크시민대학에서 공모한 사업에 수년째 참가했던 경험이 있다. 시민교육과 관련한 강좌를 기획하고,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사업비를 지원받는 형식으로, 공공도서관을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사업에 참가하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실시하는 인문독서아카데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길위의 인문학 사업도 시민교육과 관련한 주제를 채택하고, 일방적 강연만이 아니라 참가자들과 토론하는 참여형 강의와 후속모임을 이어가도록 권유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은 공모사업을 통하여 시민교육이라는 주제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평생교육과 시민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문화부는 국민들의 여가생활, 문화향수를 담당하고 있으나, 도서관은 문화 쪽만이 아니라 교육 쪽의 사명을 더 중요하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빠른 사회변화와 도서관에 요구되는 새로운 역할들 때문에 도서관장들은 물론이고 학계 교수들조차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까지 우리 도서관들이 너무 오랫동안 전통적인 도서관 역할에 안주하면서, 시대 흐름에 둔감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도서관 사서들이 감당하고 있는 여러 업무들 중 대출, 반납 같은 단순반복 업무들은 이미 상당부분 기계로 대치되고 있고, 앞으로 더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도서관 사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 일들을 잘 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여 도서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학에서 담당해야 할 몫일 터이다. 도서관학계는 사서직무분석, 사서교육과정 개편을 신속히 추진하여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전문직 사서를 양성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인력을 받아들여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낡은 지식을 가르쳐서 내보내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이자 죄악이다.

 

도서관과 사회적 독서

도서관 사서에게는 독서회 조직과 운영도 중요한 업무이다. 도서관마다 어린이와 청소년, 성인대상의 독서회가 꾸려져 있다. 문체부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도서관운영평가에서는 동아리여부도 중요 평가항목이므로, 도서관에서는 1사서 1동아리 원칙을 세우고 사서들이 직접 동아리를 조직하고 운영하도록 권장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율적인 동아리 운영이 쉽지 않아 사서가 직접 지원하거나, 독서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성인의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운영하되 사서들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한다.

사서들이 조직하여 초기 운영을 지원하되, 이후에는 독서회가 자발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겠지만, 리더없이 독서모임이 지속가능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역에서 동아리를 운영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참가해주지 않는 한, 결국 사서들이 리더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교육을 기획하고, 독서모임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들이 사서들의 주요 업무가 된 것이다.

뿐인가, 지역협력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주민들을 만나 능숙하게 협력을 조직하는 일도 사서의 업무이다. 도서관의 주민협력사업, 마을연계사업은 최근 들어 도서관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사업이지만, 사실은 지역 공공도서관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도서관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운영하는 독서회가 사회적 독서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독서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회적 쟁점을 담은 책을 읽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며, 변화를 위한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적 만족과 휴식을 위해 책을 읽는 개인적 독서에서 함께 읽기, 깨어나 실천하기의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 사회적 독서인 것이다.

도서관에서 사회적 책읽기라는 이름으로 2년여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사회적 쟁점을 담은 책을 선정하여 미리 공지하고, 당일 2~3명의 고정 패널과 1명의 게스트가 참가한 가운데 토론을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고정패널과 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게스트가 발제를 하고,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책읽기 프로그램은 상당히 흥미로운 시도였다. ‘골목 사장 분투기’(강도현, 북인더갭)를 읽고 개인카페 운영자를 초대하여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한 책을 읽고 핵전문가를 초청하여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2년 이상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관련 전문가들을 만났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참가자 수에 연연하지 않고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는 도서관측의 의지가 중요하다. 예산도 수반되어야 하고, 참가자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실시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길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통일에 대한 강의와 답사를 진행한 것도 중요한 경험이었다. 통일이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여 날마다 언론에 보도되는데도 정작 시민들이 북한과 통일에 대해 듣고 생각할 기회가 부족하다고 여겨져 통일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강좌를 기획하였다. 북한의 언어, 예술, 생활문화, 건축, 북중 국경, 독일 통일 사례, 평화에 대한 모색 등 상당히 딱딱한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매 강좌마다 예상한 인원을 훌쩍 넘기면서 뜨거운 호응 속에 강좌가 진행되었다. 도서관이 좋은 점 중 하나는 저자 초청 강좌를 하면서 강사의 저작이나 관련 주제의 도서를 전시하여 관심있는 참가자들이 책을 살펴보거나 빌려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과는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사회이슈들을 제때 끄집어내어 시민들과 함께 생각하고 토론할 기회를 자주 가진다면 우리 사회의 첨예한 의견대립과 사회갈등이 조금은 더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민교육과 사회적 독서에 대해 도서관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서관측 의지만이 아니라 정부도 도서관에 대한 제반정책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메이커 스페이스, 특성화도서관을 비롯해 너무 많은 새로운 것들을 도서관에 요구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우왕좌왕할 수도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도 전국에 공공도서관이 25곳이나 건립되었다. 몇 년 동안 도서관 건립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도서관의 사명과 역할을 재정립하고, 우리 사회에 도서관이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정책당국자는 물론이고 도서관 내부에서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획회의. 2020.6.5. 신남희. 서초구 대표도서관장 겸 반포도서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