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대의 두 사내가 풀어놓는 마흔의 고민과 희망
마흔의 심리학 /이경수․김진세 /위즈덤하우스
「힘들고 어려울 때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사막에 홀로 버려져 있는 것처럼 외로웠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작은 점이 되어버린 것처럼 쓸쓸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나이 들어 이게 무슨 꼴인가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의 많은 사십 대 남성들이 내가 겪은 그런 증상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단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선 모를 뿐이었다. 20년 이상 친하게 지내온 내 친구 녀석은 10년 동안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내게 털어놓았다.」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지독한 마흔앓이에 시달리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사내가 있었다. 주요 일간지와 주간지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했고 유명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한 사내지만, 그 무렵엔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새로운 뭔가를 할 에너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마음은 암실처럼 앞뒤 분간 못할 어둠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또 24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주위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아보았지만, 팔자 좋은 소리 한다는 핀잔을 먹기 일쑤였고, 그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걸게 되었다.……
성공한 기업가, 유명한 연예인 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 이웃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 사람 주위엔 마음을 나눌 사람이 그렇게 없었나? 갖가지 추측을 해본다. 마음의 감기로 일컬어지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많다. 사업실패나 과다한 채무 같은 문제가 없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신만의 고민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의학 밖의 영역에서 독서치료니 미술치료니 음악치료니 하는 것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앓는 이들이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마흔의 심리학』 저자인 이경수는 신경정신과 의사 김진세를 만났다. 마침 그 의사도 사십 대였다. 사십 대의 두 사내는 매주 한 번씩 만나 사십 대 남자의 고민과 갈등, 꿈과 희망, 성과 사랑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가슴이 너무도 찡했고, 때로는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통쾌한 시간들이었다. 이 책은 이렇게 두 명의 사십 대 남자가 꼬박 열 번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진지하게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풀어놓은 것이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나는 꼭 탈을 쓴 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탈을. 필요할 때마다 다른 모양의 탈을 쓰고 나가 그것이 진짜 내 얼굴인 양 사람들에게 들이밀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진짜 내 얼굴을 잃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일었다. 진짜 내 모습을 찾고 싶었다.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자신의 본질을 찾고 싶어 하는 환자 이경수에게 의사 김진세는 사십 대의 중요한 과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며, 그것을 위해 자기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해준다. 개인의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처럼 꾸준히 변하는 것이라고3 말이다.
중증의 환자가 아니라면,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의 말을 진심으로 공감하며 들어주는 어떤 존재일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도 마을 사람들 모두 모모를 찾아와 그저 하염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정신과 의사와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진심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게 되었단다. 마음을 앓는 것은 낡은 자신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라는 마음의 경고인지도 모른다.
- 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2010.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