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밀과 왕따 소녀
누더기 앤 /로버트 스윈델스 /책과 콩나무
세계적 만화가 에르제의 만화 시리즈 『땡땡의 모험』을 읽기만 하고도 에르제의 가족 비밀을 밝혀낸 심리학자 세르주 티스롱그는 가족의 비밀에 관한 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정신의학자다. 그의 책『가족의 비밀』을 읽었다.
그는 가족의 비밀이 삶의 기쁨을 해치고 생각의 자유와 관용 정신, 나아가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용기를 은연중에 파괴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소해 보이는 가족 비밀이나 가장 지독한 전체주의에서 똑같은 참담한 결과에 내몰리게 된다고 본다. 즉 비밀을 지키도록 강요받는 과정에서 집단의 구성원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거짓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부터 이중적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은 진실과 대면하길 거부한다. 모든 독재 체제가 본연의 정체를 감추고 덧씌우는 거짓이야말로 가족 간에 쉬쉬하는 비밀을 통해 우리가 이미 경험한 메커니즘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비밀은 집단 내에서 개개인이 자유 공간을 확보토록 해 주는 근본이 되기도 한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공간과 공공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전체주의 국가는 이러한 차이를 없애고 구성원의 개인적 공간과 공공의 공간 모두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통제하기를 원한다.
부모가 감추고자 하는 가족의 비밀을 인지한 아이는 심리치료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 한 나중에 가서 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때론 감춰진 사실 때문에 성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어려움이 초래될 수도 있으며, 아이일 때 경험했던 비밀스런 상황이 어른이 되었을 때야 비로소 표면으로 돌출하기도 한다.
로버트 스윈델스의 『누더기 앤』은 비밀을 간직한 가족 이야기다. 사우스콧 중학교에 다니는 열네 살 소녀 마사는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옷을 입고 다녀 아이들에게 ‘누더기 앤’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아이들은 마사를 쫓아다니며 괴롭히지만, 마사는 마땅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피할 뿐이다. 마사에게는 친구도 없고, 부모님은 ‘의로운 사람들’이라는 종교집단에 속해 있어 마사에게 엄격한 규율과 검소한 생활을 강요한다. 마사에게는 언니가 있었지만, 가족에게 부정된 인물이다. 하지만 마사는 열여덟에 집을 나가버린 언니 메리를 그리워한다. 마사의 집에는 비밀이 있다. 바로 지하실에 살고 있는 ‘혐오’. 마사가 밥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존재인 ‘혐오’는 외부에 절대 알려지면 안 되는 존재이다. 덕분에 친구나 손님이 절대 오지 못하는 마사의 집은 어둡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 마사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바로 ‘스콧’이라는 남자 친구가 생긴 것. 스콧은 마사가 처해 있는 불행한 상황을 알아채고 마사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마사의 집에 드리운 가족의 비밀은 스콧에 의해 점차 드러나게 되고, 마사는 비밀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집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으러 떠난다. ‘혐오’라고 표현되며 시종일관 가족으로부터 비밀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언니 메리가 18세에 낳은 아기였으며, 아기는 6년 동안이나 지하실에서 우리에 갇혀 짐승처럼 사육당한다. 아기를 낳은 메리는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입양되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마사의 부모는 미혼의 딸이 아기를 낳은 것이 종교적으로 어긋나는 일이라 보고 비밀에 부친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로버트 스윈델스는 영국의 대표적인 청소년 작가다. 충격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그의 책은 가족의 비밀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고통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용기와 우정은 감동을 준다. 이 책은 아무리 우울한 상황이라도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꿈을 잃지 않는 이에게 길은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 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201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