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즐거운 책읽기

끝없는 공부와 토론을 통해 국가경영의 길을 밝히다

강아래쪽마을 2014. 6. 1. 11:33

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역사비평사

 

“1995년 10월 어느 날 중국의 국가주석 장쩌민이 한국을 방문하여 대한민국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 뒤뜰을 산책하면서 북악산에 곱게 물든 단풍을 보고 두목이라는 당의 시인이 읊은 ‘산행’의 한 구절을 읊조렸다.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더 붉구나(霜葉紅於二月花).” 물론 중국말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둘러보며 딴소리를 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외교나 상담을 할 때 자신의 의도를 담은 한시를 한두 구절 인용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문화에서는 상대방이 말하는 행간의 의미를 잘 읽어야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1995년 청와대 뒤뜰에서는 주인이나 역관이나 장쩌민 주석의 시에 능수능란하게 응수하지 못했다.

“밤낮 그놈의 경연, 경연” 세간에 인기를 모으고 있는 조선시대 배경의 한 드라마에서 신하들이 너무 잦은 경연에 대해 불평한다. 경연에서는 왕이 각종 현안에 대해 신하들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며, 왕의 질문에 쩔쩔매는 신하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와 『율곡문답』의 저자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를 읽었다. 왕조사회에서 왕은 권력과 권위의 정점이다. 이 때문에 왕은 그에 걸맞은 덕성과 자질, 인품을 갖추어야 했다. 왕의 교양과 덕성, 인품과 자질은 그 나라 전체의 품격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그래서 경연은 바로 왕으로서 인품과 교양, 정치적 비전을 갖추게 하려는 교육의 장이었다. 철학과 역사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 고전을 공부하고 고전에 관해 토론하고 담론하는 자리였다. 국왕이 당대의 가장 뛰어난 석학·원로들과 함께 고전을 익히고 논의하며, 바로 군주를 교육하는 자리가 경연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왕의 하루는 어땠을까?

국왕은 해가 뜰 무렵 조강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경연이 끝나면 아침 식사를 하고, 이어서 문무 관료들과 조회를 하면서 업무 보고를 받는 등 국정을 돌본다. 정오에는 주강을 하고, 요즘 시간으로 오후 2시에 석강에 참석하는데, 이 세 차례의 경연을 삼시강이라고 한다. 이것이 국왕의 공식적인 경연, 곧 법강이다. 그리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특강 또는 보강 형식의 소대가 있는데, 특히 밤에 열리는 소대를 야대라고 한다. 소대나 야대에는 학덕이 뛰어난 학자나 은퇴한 원로가 특별히 초빙되어 왕과 담론을 하기도 했다. 밤낮 공부하며 정사를 돌보는 피곤한 직업이 바로 왕이었던 것이다.

 

성종 대에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한 사림들은 대간을 비롯한 삼사에 진출하여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왕조국가에서 비판과 탄핵 그리고 권력의 견제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 존재했고, 또한 그 기능 및 역할과 권한을 제도로 규정하고 보장했다는 사실은 참 놀라운 일이다. 누구 앞에서라도 바른 말을 하고, 또 그 말을 들어주건 들어주지 않건 간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일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중요시했다는 것도 참 훌륭한 일이다. 더 나아가 바른 말을 힘으로 막거나 억압하는 것을 금했고, 오히려 바른 말을 하도록 격려하고 권장했다는 것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경연에 적극 참여하고 열심히 강론에 임한 왕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왕들보다 치적을 더 쌓았다. 물론 경연과 치적 사이의 관계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연이 왕의 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다.『실록』에는 경연에 관한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 경연에 참석한 사람들의 성격, 학문 수준, 의식과 정신까지도 엿볼 수 있다.

 

권력은 군림하여 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밤낮없이 경건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임하여 제 직분을 힘써서 정사를 다스리고 사회를 안정되게 하고 나라를 평화롭게 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끝없는 공부와 토론을 통해 국가경영의 바른 길을 찾고자 했던 ‘경연’이야말로 조선 오백년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매일신문. 2011.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