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 떠난 부부의 유럽탐방기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백창화·김병록 /이야기나무
책을 좋아하는 부부가 유럽으로 책 여행을 떠났다. 부인은 한때 출판사에서 근무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직접 운영했던 터이다. 귀농을 꿈꾸는 남편과 유럽의 책마을 같은 곳을 만들고 싶어 하는 아내는 유럽의 책마을을 직접 돌아보기로 했다. 서점과 도서관, 동화마을도 포함하여 꼼꼼하게 일정을 챙기고 알뜰하게 둘러보았다.
영국은 출판, 방송, 디자인, 예술, 관광, 광고 등 창의산업의 비중이 경제 전체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의 7%를 차지한다. 특히 출판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무려 6조 원어치의 책을 출간했고 그중 3분의 1을 수출했다고 한다. 참 부러운 이런 일들이 그저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런던에서 약 50분 거리의 그레이트미센덴은 현대 동화에서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만든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로알드 달이 36년 동안 머물면서 대부분의 동화책을 집필한 곳이다. 여기에는 로알드 달 박물관과 이야기 센터가 있는데, 삽화가 쿠엔틴 블레이크가 직접 그리고 꾸민 그림들로 가득해서 로알드 달 동화나라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저자답게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초콜릿은 손을 대고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보인다. 기념관은 철저하게 어린이 눈높이로 만들어졌고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그가 썼던 작품 세계, 동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채워졌다.
이탈리아 콜로디의 피노키오 국립공원도 인상적이다. 피노키오의 기다란 코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등장인물들과 만난다. 피노키오가 던진 망치에 죽고 만 귀뚜라미가 나쁜 길로 가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다른 길목에서는 절름발이 여우와 눈 먼 고양이가 따라오라고 유혹을 한다. 피노키오의 죽음을 기다리는 토끼 네 마리가 관을 들고 서있는가 하면 커다란 뱀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서 앞길을 막는다. 피노키오 공원은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동화 공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한다.
동화 한 편으로 온 마을이 먹고 사는 나라도 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무대인 하이디 마을이 그렇다. 작가 요한나 슈피리가 1880년에 묘사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알프스의 작은 마을은 단순히 동화의 배경일 뿐인데도 관광객들은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영국 헤이온와이 책마을은 깊은 산골에 자리 잡고 있지만, 연간 백만 권의 책이 팔리고 일 년이면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원조 책마을이다. 리처드 부스가 사들여 거대한 책의 성으로 꾸며놓은 헤이성을 중심으로 30여 개의 책방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넘친다. 책방이 워낙 많으니 다들 똑같은 책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은 정원가꾸기와 명상서적을 전문으로 다루기도 하고, 어떤 곳은 사진과 예술서적만을 다루기도 한다.
책은 어느 시대나 금기된 지식과 사상을 다루는 터라 때로는 목숨 걸고 책을 팔러 다녀야 했던 산골마을 책장수들의 고향인 이탈리아 몬테레지오 책마을, 프랑스 앙비에를 책마을, 프랑스 몽톨리외 책마을 등 역사와 형태는 다르지만 다양한 종류의 책마을들도 찾아간다. 농촌마을 살리기의 일환으로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여 만들어진 책마을도 있고, 뜻있는 개인이 나서서 만들어진 책마을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파주 출판도시가 있긴 하지만, 유럽의 책마을과는 많이 다르다.
책을 사고 팔뿐 아니라 종이와 책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며진 책마을도 있으며, 경관이 아름답고 유명 관광지를 끼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
갈 곳 없는 작가, 꿈을 키우는 무명인들에게 기꺼이 침대와 수프를 내주면서, 파리를 찾는 모든 문학인과 예술가들의 문화 살롱으로 정점을 구가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등 유서 깊은 유럽의 서점들도 인상적이다.
(2012. 2. 2.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