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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는 동화, 새롭게 열리는 세상

강아래쪽마을 2014. 7. 6. 18:10

동화독법 /김민웅 /이봄

 

김민웅의 《동화독법》은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온 동서양의 동화와 옛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읽고 해석하는 책이다. 목회자, 언론인, 국제문제 전문가 등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갖고 있는 그는 동화와 민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중심으로 정치학, 철학, 문학의 융합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한다. 그가 꼼꼼하게 읽은 옛이야기는 미운 오리 새끼, 인어공주와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같은 서양 동화들과 우리나라의 토끼전, 심청전 까지 아우르고 있다.

 

저자는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가 애초에 오리와 백조에게 신분차이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는 점을 문제 삼는다. 자칫 백조로 태어나지 못한 존재에게 본질적 절망과 상처를 줄 수 있으며, 백조가 되는 것 외에는 행복한 길이 없다는 식의 결론은 승자 위주의 논리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기까지 자신을 도와준 오리 엄마와 이웃들에 감사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해보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 동화를 쓴 안데르센 역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유명해졌지만,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알려져 있어서 더욱 그렇다.

 

우리 고전 토끼전은 용을 상징으로 삼는 당대 최고 권력자를 처음부터 조롱하는 이야기라고 본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혼자 뒤쳐져 있는 동해는 조선이며, 용왕이 중병이 들었다는 것은 조선이 깊은 병에 걸린 것이다. 주색에 빠져 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 된 용왕이 제일 안타까워하는 것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놓치는 것이다. 백성들의 안위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는 터럭만큼도 없다.

토끼는 산간벽지 초야에 묻혀 지내면서 이름을 제대로 떨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 탓이라 여기는 조선의 사대부 선비 또는 지식인이라 볼 수 있다. 먹물 좀 들었다고 별 것도 아닌 것에 우쭐대고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지만 욕심은 많은 토끼는 저 죽을지 모르고 별주부 자라의 꼬임에 빠져 용궁으로 간다. 자라는 용궁의 권력과, 이 권력에 대한 욕망을 꿈꾸는 자들을 연결시키는 고리이다. 수천 년 묵은 자라는 그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노회하고 음흉하며 상대의 허영과 탐욕을 꿰뚫고 있다. 이런 자라 앞에 자기 간이라도 내놓을 자들이 끊임없이 줄을 선다.

 

그러나 용궁의 현실을 알아차린 순간, 간을 내놓고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라며 각성하는 토끼는 욕망과 허세와 권력에 줄을 대고 있는 대열에서 과감히 이탈해 버린다. 토끼처럼 이탈하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래서 용궁의 실패가 쌓이면 쌓일수록 세상은 좋아진다. 병든 권력이 스스로 그렇게 병들다가 무너지면 민초들의 삶은 희망을 얻게 될 테니까.

이솝 우화 중 양치기 소년과 늑대 이야기도 단순히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문제였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마을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동체가 그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방법에 문제가 생겼고, 사람들이 그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이 문제라고 본다. 양치기 소년이라는 경보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망가진 경보장치를 고치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하며,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제3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양치기 소년 한 명에게 늑대의 출현에 대한 정보가 독점되어 있었던 것과, 마을 공동체의 책임을 묻는 질문이 처음부터 빠져 있었던 것도 문제이다. ‘목동의 거짓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는 양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을 던질 때 이 우화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역사는 고장 난 경보장치를 고치는 것을 개혁이라 하고, 교체하거나 제3의 대안을 실현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는 이야기들에서 깊은 의미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작가의 시각과 노력이 돋보인다.

(2012.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