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열 가지 키워드로 본 일본인의 정신세계

강아래쪽마을 2014. 7. 6. 18:12

일본정신의 풍경 /박규태 /한길사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에 대한 숱한 정보 속에서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제대로 소개하는 책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일본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철학과 종교, 문화를 바탕으로 규명한 한양대 박규태 교수의 《일본정신의 풍경》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일본의 대표 저작들을 통해 가미(神), 사랑, 악, 미, 모순, 힘, 덕, 천황, 초월이라는 열 가지 키워드로 일본문화의 내면을 읽는다.

 

일본 정토진종의 창시자인 신란의 악인성불설은 얼핏 기독교의 원죄의식과 닿아있다. 신란에게 악이란 인간 본래의 모습 혹은 근본악으로 상정되어 있다. 하지만 성불 자격이 악한 사람에게만 있다거나 선악의 기준은 상대적이라는데 이르면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일본은 기독교인이 인구의 1퍼센트도 안 되어 기독교인이 상당한 인구를 차지하는 한국과 대조된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엔도 슈사쿠는 소설 《침묵》에서 작중인물 페레이라 신부의 입을 빌어 일본 민족이 인간과 아주 동떨어진 신을 생각할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말한다. 추상적 사고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현상세계 그대로를 절대세계로 인정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현상 너머의 초월적 경지에서 절대자를 찾으려는 입장에 대한 거부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본인은 새로운 것과 외래적인 것을 잘 받아들여 그것을 수용하고 모방하는 데 천재적이다. 자연숭배와 애니미즘을 기조로 하는 일본 신도의 정신, 즉 가미의 변조시키는 힘, 일본정신의 변조시키는 힘은 강력하다. 과거 한반도를 거쳐 중국에서 일본으로 들어온 모든 사상들, 도교·샤머니즘·유교·불교 등도 동일한 변조의 운명을 겪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런 변조의 원인을 일본사회와 문화의 구조에서 찾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나치에 비해 일본 파시즘에는 명확한 정치적 주체가 없었으며 따라서 책임의식도 없었다. 일본에서는 분명 행동은 있었지만, 아무도 그 주체가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다. 마루야마는 그것을 ‘무책임의 체계’라 불렀고 그런 시스템을 ‘천황제 구조’라고 했다.

 

일본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대립의식이 아주 희박했다. 지배자는 적어도 주관적 의식에서는 피지배자를 마치 가족의 일원처럼 여긴다. 일본사회 전체가 가족의 확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대개의 사회적 집단은 여전히 가족 원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일본 역사에서 황실을 몰아내고 최고 통치자가 되려 했던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는 역사상 한 번도 철저한 혁명이 없었다. 한 시대의 지배계급은 다음 시대로 계속 이어졌다.

 

나카무라 하지메는 《일본인의 사유방법》에서 오늘날 일본인들은 죄의식의 결여가 현저하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로 일본인의 현세중심적 경향을 꼽고 있다. 즉 일본인은 현세중심주의로 인해 죄악에 대한 자각에 거의 인색하다는 것이다. 그는 개별적인 사실 또는 특수한 상황만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사유방법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의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그런 위험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므로 일본은 이제부터라도 개별적인 현상이나 사실을 통해 보편적인 원리를 찾는 일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지나칠 정도로 높은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지극히 낮은 현실감각으로 인해 항상 극단적인 양극화의 두터운 벽 속에 갇혀 있다며,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보편성이나 원리성의 추구를 통해 개별적인 현상이나 사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논리보다는 직관, 단순함을 추구하는 신앙세계, 국화와 칼로 상징되는 이원성, 가면과도 같은 존재인 천황, 개개인에게 커다란 자기부정을 요구하는 보은·기무·기리·하지로 대표되는 일본의 도덕체계 등 일본정신의 풍경이 두루 펼쳐진다.

(2012. 7. 26.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