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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바라본 도시 공간 서울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이경훈 /푸른숲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는 서울이라는 도시공간을 건축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책이다. 저자인 이경훈은 건축과 교수로, 이 책에서 우리나라 대도시의 특징을 집약해서 갖고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서 서울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뉴욕에서 꽤 오래 생활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뉴욕과 서울을 수시로 비교하는데, 뉴욕은 최첨단 현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되고, 정감 있고, 걷기 편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처럼, 시민들의 일상이 걷기로 시작해서 걷기로 끝이 나는 뉴욕에서는 부자든 가난뱅이든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 거의 모든 명소에 걸어서 갈 수 있고, 걸으면서 친구를 만나고 사랑을 한다. 걷는 것이 도시의 문화를 만들며, 걷기야말로 도시의 공유 공간을 즐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면 서울은 걷기 힘든 도시다. 저자는 귀국 후 자동차 없이 살 목적으로 걷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자동차가 점령해버린 인도와 너무 넓거나 좁은 도로, 체계가 없는 구조는 걷기에 도무지 적합하지 않다. 서울시가 지정한 ‘걷고 싶은 거리’는 정작 사람이 별로 없는 한산한 길이라 사람들이 모이고 북적거리는 도시의 걷고 싶은 길과는 전혀 다르다.

흔히 도시적인 건축의 상징으로 여기는 서울의 쇼핑몰은 서구적이며 현대적이지만 도시적이지는 않다. 상점이 먼 미국의 전원도시에 근원을 두고 있는 쇼핑몰은 거리와 상점을 흉내 내서 만든 작은 가상 도시로, 주변의 거리를 죽게 하고, 결국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들어버릴 뿐이다.

 

서울에서는 넉넉한 주차장과 쾌적한 공원이 없으며, 대신 적당한 폭의 인도와 거리를 메우고 있는 상점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이야말로 도시의 거리가 갖춰야 할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상점의 쇼윈도는 교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요소이며, 무엇보다 걷게 하는 도시의 장치로서 의미가 크다.

뉴욕에서는 노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거나 저녁이면 선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시켜놓고 사람들을 만나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집 안에서 이루어지던 행위의 대부분이 도시에서는 일종의 공유 공간으로 확장되어 벌어지는 것이다. 프랑스의 카페, 영국의 펍 같은 공간적 장치 또한 이러한 도시적 특성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공유 공간 대부분은 노래방, 찜질방처럼 ‘방’이라는 폐쇄적 형태로 이루어진다. 도시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방’문화는 기존 관계를 심화시킬 수는 있어도, 새로운 도시적 관계를 확장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저자는 친밀한 세계가 자신의 가족으로 한정되고 이웃이나 공동체에는 배타적인 아파트 문화와 함께 ‘방’문화를 지금 우리 도시공간의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도시는 우리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이며 현실의 삶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기억의 장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다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다. 하지만 서울은 무엇이든 빨리, 그리고 새로 짓는다. 기술적인 안이함과 기술에 대한 불신, 그리고 건축을 일종의 유행으로 보는 조급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울의 전체 건물 절반 이상이 지은 지 20년을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도시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 장소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토론토대학의 지리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랄프는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장소며, 그 안에서 자신을 확장시키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맥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볼 때 서울시민들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며 살고 있는 셈이다.

도시의 쾌적함은 녹지의 면적과 나무 수가 아니라 공유 공간을 함께 나누고 그곳에 생명력을 가져다주는 데 있다. 저자는 서울이 푸르른 녹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도시 되기’에 실패해서 생기는 문제가 훨씬 더 많다며, 자연이 자연다워야 하듯 도시는 도시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2. 7. 12.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