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아이들 /히로세 다카시 /프로메테우스
“콰왕 쾅!! 우크라이나의 어두운 밤하늘에 엄청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 속에서 폭발을 목격한 발전소 주민들은 그저 공포에 휩싸여 떨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넋을 잃고 눈앞에 타오르는 거대한 불기둥을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폭발한 발전소 건물에서 솟아오른 엄청난 불길은 그 새빨간 혓바닥을 널름거리며 컴컴했던 부근 하늘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1986년 4월 26일, 소련의 비옥한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로부터 120km 떨어진 체르노빌의 ‘레닌 원자력발전소’에서 세계 원자력 발전 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체르노빌을 중심으로 사방 9,100km에 걸쳐 공기와 지표가 모두 오염되었으며, 방출된 ‘죽음의 재’는 북반구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일본의 유명한 반핵 평화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의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었다. 소설은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발전소 간부인 안드레이 세이로프 가족으로 아내 타냐, 열다섯 살의 사려깊은 아들 이반과 열한 살 먹은 귀여운 딸 이넷사는 어느 날 밤 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곧 그들은 당국의 지시로 살던 아파트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이동 중에 안드레이는 사고수습조로 화재중인 발전소에 투입된다.
“타냐는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다가가 상대방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타냐를 향해 몸을 돌린 남자는 땀과 진흙으로 엉망이 된 얼굴에 좌반신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거기에다 너덜너덜해진 셔츠 사이로 드러난 그의 우반신은 목덜미에서 가슴팍까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이 무슨 처참한 꼴인가. 타냐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피투성이인 사내의 손목을 천천히 놓았다.”
아내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발전소에서 탈출한 사내는, 갓난아기를 잃고 남편과 함께 죽기를 소원한 아내와 함께 총살당하고, 얼마 후 타냐는 안드레이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다. 이반은 눈이 멀고, 이넷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가운데 가족은 분리 수용되고, 타냐는 아이들을 찾아 헤매지만 끝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 아무도 그들의 죽음을 모르는 비밀스런 병원에서 이반과 이넷사,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쓸쓸히 죽어간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재배 우유·시금치 방사능 물질 검출’, ‘도쿄 등 5개 지역 수도물에서도 방사능 오염 확인돼’, ‘방사선 공포로 도쿄 시내 행인 80%나 줄어’. 인류 최악의 핵사고로 일컬어지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25년이 지난, 2011년 3월 21일자 신문기사의 소제목이다. 직원의 사소한 실수로 일어났다고 하는 체르노빌 사건과 달리, 이번 사고는 일본 최악의 지진으로 야기되었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천재지변이나 폭격에 약하다는 점을 위험요인으로 든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발생할 경우 핵발전소는 곧바로 핵폭탄이 된다는 것이다. 방사능 물질은 냄새도 색깔도 없지만 한번 누출될 경우 대량의 치명적인 피해를 낳을 뿐 아니라 후유증 또한 극심하다. 세계 곳곳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났고, 체르노빌의 경우 백러시아에서 무려 30만 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그 외에도 핵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리가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어려우며, 온배수로 인한 열오염문제도 심각하다고 한다.
전 세계의 반핵 평화운동가들의 반대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빌 이후 전 세계의 핵발전소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늘어났다. 그리고 이번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보도통제로 진실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심은 커져만 간다.
1945년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의 생존인물인 나카자와 케이지의 만화 『맨발의 겐』과 함께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으며, 핵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 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201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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