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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즐거운 책읽기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게리 폴 나브한 /아키브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기껏해야 주식으로 삼는 주요 작물들의 지리적·문화적 기원을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다. 그저 우리가 먹고 싶기만 하면 종자 관리자와 식물 육종가, 묘목업자, 농부 들이 농작물 공급 및 배급망을 동원해 언제든 식량자원을 구해 올 수 있을 것이라 쉬이 믿어버린다. 그러나 1941년 레닌그라드의 종자 지킴이들처럼 우리는 지금 시간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구의 종자 다양성은 바람이 휙 불면 꺼져버리는 촛불처럼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그 어떤 생명공학도 세계 구석구석 농부들의 밭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자 속에 이미 존재하는 유전적 변이를 발명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 요즘 생물학에 투자되는 기금 중 많은 부분이 유전자 보존과 분석이 아닌 생명공학 실험으로 내몰리고 있다. 생명공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침공으로 900일 동안 레닌그라드가 봉쇄되었을 때,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씨앗과 작물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때 이들이 끝까지 지키던 씨앗들이 바로 바빌로프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았던 종자들이었다.

전 세계 다섯 대륙의 작물종자를 수집한 유일한 과학자이자 인류의 새로운 농법을 찾아 115회의 원정을 주도한 탐험가였던 바빌로프는 굶주림으로 죽었다.

농부, 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게리 폴 나브한이 식량학자 바빌로프의 삶에 매료되어, 그의 일지를 나침반 삼아 전 세계를 누볐다.

인류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과업에서 농업생물다양성은 주춧돌에 해당한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이 바로 바빌로프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에게는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바빌로프는 그의 신념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 농업생물다양성 없이는 작물의 질병과 전염병, 가뭄과 홍수, 지구온난화와 세계화가 낳은 경제적·환경적 부작용 앞에서 세계 식량체계는 무력해지고 말 것이다.

 

어떤 작물이 특정 질병에 왜 잘 걸리는지 또는 왜 면역성이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작물이 현재 어떤 생태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작물의 조상들이 어떠한 생태조건에서 스트레스를 겪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진화론적 관점에 입각해 바빌로프는 작물과 야생근연종이 처음 유래하고 퍼져 나가기 시작한 곳을 찾아 나섰다.

바빌로프는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종자를 수집하기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종자표본을 남겼다. 바빌로프는 종자뿐 아니라 식물의 잎과 줄기, 꽃, 열매도 함께 채집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식물표본실에 보관했는데, 그것들의 상당수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바빌로프 역시 씨앗의 힘을 믿었다. 바빌로프는 열다섯 가지 언어에 능통했다.

에티오피아 원정에서 바빌로프는 미래의 작물 선발과 재배에 활용할 종자를 성공적으로 수집했고, 소련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식량안보를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에티오피아에 독특한 생물문화유산이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2011.12. 22. 매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