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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코로나19 시대의 도서관

신남희(서초구 대표도서관장 겸 반포도서관 관장)

 

신종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크게 흔들어 놓은 지 60일이 지났다. 이제 세계는 코로나 전과 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할 정도로 코로나가 우리 사고와 삶에 미친 충격과 영향은 엄청나다.

전국 도서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도서관을 휴관한지도 2개월이 가까워온다. 사상초유의 전국 도서관 동시휴관 사태가 길어지면서, 재난의 시기에 도서관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이 깊어진다.

적과의 전투가 한창인 도시 한복판에서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고 서비스를 계속한 도서관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은 적이 있다. 2차 대전 시기 러시아 도서관 이야기다. 빼쩨르부르크에 있는 과학아카데미 도서관은 러시아에서 시조격에 해당하는 도서관이다. 당시 독일군은 빼쩨르부르크를 9백일 간 봉쇄하여 식량과 연료의 공급을 차단했고, 그 바람에 67만 여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포탄에 맞아 죽었다.

이러한 시기에 과학아카데미 도서관은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았다. 영하 30~40도까지 수은주가 내려가는 극심한 혹한에 유리창도 깨져서 없고, 난방도 못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심지어 군대와 병원을 위해 이동도서관까지 운영했다. 직원들은 살인적 추위와 배고픔, 날아오는 포탄 속에서 도서관의 자료와 열람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고, 그 결과 당시 직원의 절반 정도가 사망했다.

총격으로 깨진 유리창, 여직원들이 두꺼운 옷과 털모자를 걸치고 독일군의 공습을 감시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 독서에 열중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여전히 남아 서 참혹한 시대에도 사명을 완수하고자 최선을 다한 도서관과 사서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공포와 불안에 떨던 빼쩨르부르크의 시민들은 전쟁이 계속되는 엄혹한 순간에 단 하루도 꺼지지 않은 도서관의 불빛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읽어냈을 것이다.

2001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테러사건인 미국 9.11사태 때도 도서관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당시 도서관의 신속한 정보제공과 시민들에 대한 서비스는 이후 미국 사회에서 도서관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테러 발생 직후 뉴욕 공공도서관 사서 그렉 카렌버그는 테러 사건을 겪은 시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상정하여 그것들에 대응하는 정보원을 정리한 웹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도서관 웹사이트 긴급 전화번호 리스트항목에는 병원, 경찰, 재해지원 단체, 시의 긴급용 창구, 헌혈, 기부, 자원봉사, 보험에 대한 각종 상담 창구 등의 안내 정보가 게재되었다. 그 외에도 메일로 사서에게 문의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했으며, 사건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중동, 이슬람 등의 다른 문화 이해, 종교 등을 주제로 한 추천 도서 목록도 있었다.

고통을 느끼는 시민을 위한 카운슬링 정보도 제공되었으며, 사건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시나 소설, 치료 등의 도서 일람도 게재했다. 정보를 계속 갱신하였고, 10월에 탄저균 사건이 일어나자 생물 병기 테러에 대한 정보, 그 대처법과 관련한 서적 리스트, 링크집을 즉각 작성하였다.

지역 커뮤니티의 정보 센터로써 긴급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도서관 정보의 축적과 실행력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도서관들은 이런 정보들을 얼마나 축적하고 있는지, 사명감과 목표의식을 갖고 축적하는 기관은 과연 있을지 궁금해진다.

 

재난에 대처하는 공공도서관의 자세

공공도서관들이 휴관에 들어가기 시작한 직후, 휴관이 얼마나 길어질지 어느 정도로 사태가 확산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비교적 단기간의 업무 계획을 세워 진행하기 시작했다. 계획된 강연회와 프로그램들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안내 문자를 보내고, 쉼 없이 걸려오는 시민들의 문의전화를 받았다.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어있는 장서점검을 앞당겨 실시하고, 밀린 일을 하거나 미흡했던 사업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전쟁이나 테러와 다른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도서관이 어떤 서비스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과 토론이 이어졌다.

지하철역에 설치된 무인도서대출반납기(스마트도서관, U-도서관)와 각 도서관마다 보유하고 있는 전자도서관 이용 안내가 먼저 이루어졌다. 일부 도서관들은 신종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한 정보제공, 웹사이트 소개 등을 시작했다. 온라인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코로나19 정식 홈페이지를 링크해 원하는 이용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으며, 관련 기관 링크서비스를 제공했다.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가짜뉴스가 확산되면서 국민 불안감이 증대되고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여 신속·정확한 관련 정보를 수집, 파악, 제공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동영상 스트리밍, 책을 읽어주는 오디어북 스트리밍, 컨텐츠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도 있다. 전자잡지와 국내 학술지 원문DB 제공서비스를 확대 실시하기도 한다.

SNS를 통한 독서토론 모임 운영, 온라인으로 독서토론, 글쓰기, () 필사 모임 등을 운영하거나, 온라인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홈페이지를 공유했으며,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극장(유튜브 채널)' 등 집에서 활용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소개하거나, SNS를 통해 '바이러스 관련 북큐레이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일부 도서관은 미리 예약을 받은 후 택배로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예약된 책을 찾아 대출한 후 박스에 넣고 포장하여 발송하는 서비스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선착순으로 한정된 이용자에게 서비스한다. 직원이 직접 예약도서를 배달하는 도서관도 있다. 직접 배달과 택배, 방문 대출 중 이용자가 선택하도록 한다.

어떤 도서관은 북 드라이브 스루 서비스를 시작했다. 예약된 도서를 미리 찾아놓은 다음, 이용자가 오면 회원증을 받아 스캔한 후 예약된 책을 갖다 주는 방식이다. 방호복을 입고 자동차로 책을 가져다주는 도서관 직원의 모습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북 드라이브 스루는 주차와 통행 등 차량이동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여건이 되는 도서관만이 이 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다.

몇몇 도서관은 예약도서 대출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예약된 도서를 찾은 후 문자를 보내면, 이용자가 방문해 책을 대출하는 형태이다. 도서관 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제한된 공간에서 책을 대출해준다. 고속버스터미널의 매표 창구 같은 조그만 창문을 열어 책을 내주는 도서관도 있고, 도서관 출입문 근처 방풍공간에서 대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루 2,3시간 정도 한정된 시간에 대출을 진행하는 도서관이 대부분이지만,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주 6, 하루 8시간씩 진행하고 있다. 창밖에 있는 시민에게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소형 마이크를 착용하고 대출업무를 진행하는 모습이 도서관에서는 낯설지만, 새롭기도 하다. 비대면 서비스 취지를 살려 예약된 도서를 도서관 입구 사물함에 비치해두고, 직접 찾아가게 하는 도서관도 있다.

예약도서 대출의 경우, 사서가 책을 일일이 찾아서 보관해 두었다가 빌려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손이 훨씬 많이 간다. 과거 도서관이 폐가제로 운영될 때 책을 찾아주는 것과 비슷한 형태인데, 책 대출권수가 그때보다 훨씬 많다. 도서관의 다양한 서비스에 대해 시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부 서비스에 대해서는 직원들의 안전과 감염확산을 우려하기도 한다.

한편, 여러 서비스들이 도서관별로 상이하고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시민들에게 골고루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 예약도서 대출서비스의 경우에는 비대면 서비스라고 할 수 없고, 정부의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어긋나는 면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원생이 코로나19 사태로 폐쇄된 도서관 지정열람실을 열어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패소한 사례는 감염병 시대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의무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있다.

 

신종 전염병과 도서관의 미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 확산이라는 상황은 전쟁이나 9.11 사태 같은 테러와는 대응 양상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는 본인의 감염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감염을 시키게 되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질병이다. 치명적인 전염병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우리 세대에게 현재의 상황은 낯설고 새로운 공포와 불안,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전문가들은 이제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가 주기적으로 창궐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지금 도서관들이 제공하고 있는 여러 서비스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유사한 사태가 다시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도서관들도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대출, 반납을 진행할 장치를 개발하고, 대응 매뉴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재난 시 이번처럼 지자체별로 도서관 서비스 범위에 대해 상이한 입장을 보일 경우, 지자체 소속 도서관으로서 소신 있는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정부나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공공도서관 서비스에 대한 통일된 지침을 내려주고 시행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다른 한편, 코로나 발생 직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로 몇 주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는지, 행정기관의 요구에 한발 앞서 먼저 고민하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본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서비스라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필요한 직업정신과 사명감은 무엇일지 생각이 깊어진다.

 

기획회의. 2020.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