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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새벗에서 시작된 도서관의 꿈

1980년대 후반 전국에서 활성화된 민간도서관 설립 움직임은 오래 지속된 권위주의정권의 지식과 정보의 독점에 항의하는 지식민주화운동의 일환이기도 했고, 일상적 시민문화공간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려는 초보적 단계의 문화운동이기도 했다.

서울,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민간도서관은 활발하게 설립되었으며 서울 중랑의 푸른소나무 주민도서실, 관악의 난곡주민도서실, 대구 새벗도서원, 마산 책사랑도서관, 부산의 노동도서원이 모두 이런 맥락에서 설립된 도서관들이었다. 이런 민간도서관들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성격을 달리하면서 설립 운영되었으며, 사회운동의 분화와 심화 속에서 소멸되거나 다른 형태로 변화 발전하게 된다.

 

청소년과 함께 출발하여 노동자와 동행하다

나는 198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민간도서관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립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보니 사회는 대학에서 책으로 배운 것보다 훨씬 부패한 것처럼 보였고, 사회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이 깊던 무렵이었다. 우연히 부산의 늘푸른 도서원이라는 곳에서 청소년을 위한 도서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방문한 뒤 도서관 설립을 계획하였다. 당시 부산은 노동도서원을 비롯해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도서관 운동이 활발한 상태였다.

새벗도서관을 설립했을 당시 인구 200만의 대구광역시에 공공도서관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시립도서관 7개관에 불과했다. 도서관 수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대부분의 도서관이 도서 대출반납과 개인 공부를 위한 열람실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문화프로그램도 구태의연하여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시민들이 새로운 정보를 구하거나 자유롭게 만나고 교류할 시민문화공간이 필요했다.

사재를 털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일년여 준비를 거쳐 198971일 대구시 중구 봉산동 동아양봉원 4층에 새벗도서원을 열었다. 도서원을 열 때 이미 몇 개의 청소년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고, 인근 고등학교에 널리 입소문이 나 있는 상태였기에 도서원을 열자마자 청소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도서원은 학교가 파하는 시간이면 청소년들로 북적거렸으며, 특히 주말에는 종일 바글거렸다.

그런데 원래 예상했던 청소년들 말고도 뜻밖의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모여들고 있었으니, 바로 이십대 청년들이었다. 청년들 역시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간호사나 사무직, 서비스직, 생산직 등 다양한 직종에 근무하고 있었고, 군대체복무중인 청년들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모여든 청년들을 위해 여러 소모임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등산반이 만들어졌고, 풍물반, 노래반, 글쓰기반, 역사연구반 등이 뒤를 이었다. 청년들은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모였지만, 술을 마시거나 취미소모임을 하느라 더많은 시간을 보냈다.

등산반은 매월 산행을 가는 한편, 여름철에는 휴가를 맞추어 지리산 종주 산행을 떠나곤 했다. 별이 쏟아지는 세석평전에서 노래를 불렀고, 밤늦게 술잔을 기울이며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던 어느 여성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했다. 투표를 한 적도, 친구들과 야유회를 가본 적도 없다던 나보다 조금 어린 그 여성 노동자의 말은 당시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새벗도서관이 중구에 있던 십 년 동안 청년들은 소모임을 통해 도서관의 주축으로 활동했고, 직장인들 외에도 작가 지망생이나 무명 연극배우,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 등 다양한 부류의 청년들이 도서관에 모여들었다. 그들이 자원봉사를 하며 도서관운영을 도와주었고, 함께 영화제와 동아리 연합행사를 준비했다.

도서관 개원 일 년 남짓 지난 뒤부터 공간이 좁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 어떤 분이 다가구주택 반지하 공간을 청소년을 위해 내어주겠다고 하여 청소년도서원은 분가를 했다. 옮긴 공간은 너무 예뻐서 청소년들이 캔디의 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많이 드나들다 보니 이웃들이 불편해하기도 했고, 집주인에게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둥 경찰의 압력도 있어서 오래 그곳에 있지는 못했다. 그 후에도 청소년도서원은 꽤 오랫동안 경찰이 신경 쓰며 관리하는 곳이었다. 자그마한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친구들과 놀며, 독서모임을 할 뿐이었는데도 그랬다. 1990년대 초반이었다.

이후 새벗청소년도서원은 도서관으로서 성격보다 청소년교육문화사업을 전문영역으로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된다.

새벗도서원에서 주요이용층이었던 청소년들이 떠나고 나니, 도서관을 계속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청년들이 도서관에 애착을 갖고 계속 이용하는 바람에 도서관을 좀 더 확장하여 도서관답게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19936개월간 기금을 모으러 지역의 어른들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4천만원의 거금을 모아 새벗도서관을 개관하였다. 교통이 편리한 위치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과 회의실, 휴게공간을 갖춘 어엿한 도서관이었다. 당시로는 드물게 전면개가식에 2만권 이상의 책을 갖추었고,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북카페같은 분위기여서 시민들이 독서뿐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도 애용하였다. 화제가 되거나 인기있는 도서를 신속히 갖추어 어린이부터 청년, 성인 등 이용계층이 다양하였으며, 공공도서관이 저녁 6시면 문을 닫던 시절에 저녁 930분까지 운영하여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새벗은 개관 후 10년 동안 정부와 자치단체의 어떤 지원도 없이 오롯이 민간의 힘으로 운영되었다. 사립공공도서관으로 등록한 뒤에도 약간의 공적 지원금 외에는 자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도서관으로서 역사성을 갖고 있다. 다른 민간도서관과 달리 이처럼 긴 시간에 걸쳐 존속할 수 있었던 원인은 운영자의 의지 못지않게, 새벗이 좋은 책들을 갖추고 기존 공공도서관과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시민들의 암묵적 기대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새벗도서관 초기 주이용자였던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는 편안하게 이용하고 교류할 문화공간에 대한 욕구가 컸다. 노원구의 공릉청소년센터와 은평구의 신나는에프터센터에 가보고 깜짝 놀랐고, 그런 공간들이 더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소년들이 모여서 놀고 배가 고프면 먹고, 친구를 사귀기도 하는 공간. 그런 공간들은 여전히 우리 청소년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문화공간이 필요한 것은 청년들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라는 보호막을 벗어나 사회에 내던져진 것처럼 느끼며 막막해하는 청년들을 따뜻이 맞아 보듬어주고 이끌어주는 곳이 필요하다. 공공도서관이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야 하고, 청년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새벗을 넘어 더 넓은 도서관의 세계로

1999년 새벗도서관은 중구에서 달서구로 이전하였고, 대구 사립공공도서관 1호로 등록하였다. 인구 60만의 주거지역이면서 공공도서관은 구시가지 시립도서관 한곳밖에 없던 달서구에서 새벗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립공공도서관으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벗도서관을 중구에서 달서구로 옮기면서 청년들 대신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이 주이용자층이 되었다. 마을도서관으로 지역 속에 뿌리내리겠다고 생각하며 도서관을 옮긴 것이었지만, 청년들을 잃어버린 것은 지금도 아쉽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존의 주민도서실, 노동도서원 대신 어린이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이 새롭게 전국 곳곳에 생기게 되었고, 구 단위 공공도서관이 마을 곳곳에 건립되면서 시민들의 도서관 이용 여건은 훨씬 좋아졌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마을도서관을’, ‘책읽는 ○○는 선거홍보현수막이나 구청 정책자료집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반가운 구호가 되었다.

새벗도서관은 도서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대에 민간도서관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시대와 상황이 달라진 만큼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례일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잠재되어 있으며, 그 잠재욕구를 개발하여 도서관으로 오게 하는 것은 도서관인들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도서관 수가 늘어나면서 이용자들이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도서관이 있고,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도서관에 오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은 인프라가 크게 확대되고 법제도도 개선되는 등 발전의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는 계층도 한정되어 있어 애써 만들어지는 도서관 인프라가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할까 걱정스럽다.

사회의 여타 분야가 그렇듯이 도서관을 둘러싼 제 여건도 녹록지만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도서관을 찾지 않는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불러들이고,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더욱 확장하고 새롭게 개발해나가야 한다. 아이들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평생독자가 될 수 있도록 도서관과 학교, 지역사회가 두루 협력하고 노력해야 한다.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자주 가서 머물고 싶은 매력적인 공간이자, 성인들에게 평생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웃과 지역사회를 만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 필요하며, 그곳이 바로 도서관이라고 굳게 믿는다.

도서관인들이 현장에서 전문가 정신으로 도서관을 운영해나가며 도서관의 기반을 든든히 다지고 도서관문화를 활짝 꽃피워나가겠다는 자신감과 열정을 가지면 좋겠다.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나누며 도서관이 할 일을 적극적으로 찾는 그런 도서관인들을 보고 싶다. 도시의 변화와 발전을 일구는 힘, 도서관의 가능성을 도서관인들이 증명해나간다면 도서관발전과 더불어 도서관인들의 미래도 활짝 열릴 것이다.

(2020. 10. 20. 기획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