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같은 개혁의 뒷받침이 되거나 시민의 정신적 정화에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같은 작은 마을도서관 만들기 운동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절실히 필요한 일이지만 제 도서관 하나 유지하는데 급급한 현실이 아쉽습니다."
대구 최초의 사립공공도서관인 새벗도서관을 14년째 운영하고 있는 신남희씨(38)는 대구의 도서관 부족 현상이 자신의 탓인 양 안타까워했다.
신씨가 사립도서관 개설에 나선 것은 1989년. 경북대 영문과를 졸업한 신씨는 학창시절 YMCA 등에서 사회운동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후배 고교생들로부터 방과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하소연을 듣자 막연히 이들에게 의미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운동에 뛰어들었다. 25세의 처녀로 돈 마련이 불가능했던 그녀는 고령이 고향이어서 부모가 재학때 얻어준 자취방 전세금을 몰래 빼돌렸다.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 15평 규모의 4층을 빌리고 1천여권의 책도 사들였다. 이곳저곳 수소문하고 다니며 책 기증도 받아 3천권의 장서로 도서관을 열었다. 동네만화방 수준의 볼품없는 도서관이었지만 신씨는 가슴 뿌듯한 성취감을 얻었다. 우선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독서모임을, 자기 또래의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등산모임과 풍물모임 등을 결성하여 도서관을 통한 사회 기여를 꿈꿨다. "사회에 대한 어떤 목표를 가졌다기보다는 책이 제 취미에 맞은 때문이겠지요"라며 그녀는 겸손해 한다.
500여명의 후원회원들이 월 2천원의 회비를 거둬 도서관 운영비를 그럭저럭 충당해 나갈 수 있었다. 이같은 그녀의 봉사활동이 알려지자 어느 후원자가 중구 동인동에 반지하 공간을 무료로 선뜻 내주었다. 청소년모임만을 따로 떼어 이곳에서 '청소년 새벗'을 출범시켰다. 이들은 뒤에 '청소년문화센터 우리세상'으로 모임을 발전시켜 현재에는 매주 토.일요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청소년 축제마당을 여는가 하면 매년 가을마다 대구에서 가장 큰 청소년축제인 '청소년 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새벗도서관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93년. 최상천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이 나서면서 후원회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된 것. 10여명의 변호사와 의사가 설립기금 100만원씩을 선뜻 내는가 하면 10만원의 평생회비를 내는 회원들만도 1천여명에 이르러 6개월만에 3천만원의 기금을 마련했다.
2만권의 장서를 확충하고 대구시 중구 남일동에 50평 규모로 도서관을 확장했다. 독서문화활동이 더욱 활기를 띠면서 1998년에는 독서문화상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시 외곽지역에 대형베드타운이 형성되면서 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져 도서관 활동에 한계를 느끼게 됐다.
신씨는 고민 끝에 1999년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으로 도서관을 옮겼다. 비록 5층 건물의 꼭대기층이지만 110평 규모의 공간을 마련한데다 장서 규모도 2만5천여권으로 늘었다. 신씨와 후원회원들간의 토론을 거쳐 매월 100여권씩 구입하는 이들 서적은 일반 공공도서관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는 게 새벗도서관의 자랑이다.
게다가 60여석의 열람실과 2개의 모임방 및 강의실을 갖추면서 새벗도서관의 활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솔마음' '초롱초롱깨비' 등의 독서문화모임, 들꽃모임 등을 결성하고 매달 새벗문화강좌와 어린이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정약용의 자취가 남아있는 전남 강진 일대, 다양한 생명체가 자라고 있는 우포늪 등 어린이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정서적으로 도움을 줄 만한 곳이면 전국 어느 곳이든 답사를 떠났다. 벌써 50여회째에 이른다.
올해 두번째로 '성서 어린이날 큰잔치'를 열기도 했다. 성서 와룡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큰잔치는 대구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서울의 유명 어린이 공연이 펼쳐지는가 하면 미술.과학 등 특유의 체험학습장 코너가 운영돼 지역 주민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새교육시민모임, 자치연대, 대학생 및 고교생 자원봉사자 등으로 꾸미는 이 어린이잔치는 대구에 새로운 어린이 축제 프로그램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오는 10월에는 어린이문학축제도 마련할 예정이다. 일주일에 걸쳐 어린이 무대공연을 비롯해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놀이, 아동문학가 강좌, 동화구연 등 그야말로 어린이들이 즐기고 함께 하는 문학축제를 연다는 계획이다.
새벗도서관은 이제 독자 건물을 갖는 꿈을 키우고 있다. 대구시 서구 중리동 상리공원에 도서관을 세우려는 것. 그러나 신씨는 "정부가 벤처로 포장만 하면 수억원씩을 지원하면서도 그 밑바탕이 되는 도서관 건립에는 관심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추리작가 김성종씨가 부산에서 10년째 사립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이토록 관심없어 하는 줄 몰랐다. 10년동안 너무 바보같이 살았다'라고 말했는데 지금의 제 심정과 비슷하다"며 신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신씨는 "이같은 도서관은 더욱 많아져야 하며 시민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며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기부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평소 '부자로 죽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것은 없다'고 말했으며 그것을 몸소 실천했다"고 덧붙였다. 조용한 모습이었지만 초등학생 딸을 둔 30대 후반의 주부답지 않은 당참이 느껴졌다.
/남윤호기자 sag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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